강유위(캉유웨이)의 대동서(大同書)연구
1. 강유위(캉유웨이康有爲)의 생애
2. 대동서 서문(序文)
3. 대동서의 목적과 목차(目次)
4. 강유위 사상연구
5. '대동'사상의 내재적 모순
1. 강유위-캉유웨이의 생애 (1858.3.19~1927.3.31)
자 광하(廣夏). 호 장소(長素). 별명 조이(祖詒). 광둥성 난하이현[南海縣] 출생이다. 무술변법(戊戌變法)의 중심적 지도자이다. 전통적인 유교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공양학(公羊學)을 배우고 널리 유럽의 근대사정도 익혔다. 그 무렵에 격렬해진 열강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하여 일본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본따서, 국회를 열고 헌법을 정하여 입헌군주제로 하는 정치적 개혁[變法自疆]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고향에 사숙(私塾) 만목초당(萬木草堂)을 열고 량치차오[梁啓超] 등을 교육하는 한편, 황제에의 상서(上書)와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에서 면학회(勉學會)를 조직하는 등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1898년 그의 ‘변법자강책(變法自彊策)’은 제사(帝師)인 옹동화(翁同龢 )를 통하여 광서제(光緖帝)에 받아들여져 무술변법이라 불리는 개혁을 지도하였다.
과거(科擧)의 개정, 실업의 장려, 부정관리의 정리 등, 그 내용은 시대의 조류에 알맞은 것이었으나 개혁의 추진력이 궁정 내의 일부에 한정되었고, 국민들과의 광범한 유대가 없었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100일변법’이라 불리고 있듯이 불과 100일쯤 뒤에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배반으로 실패로 끝나고, 서태후(西太后) 등의 수구파(守舊派)가 모든 것을 원상대로 환원시키자 강유위 등은 해외로 망명하였다. 망명 후 보황회(保皇會)를 설립하여 의화단(義和團)의 난을 틈타 선통제(宣統帝)의 복위를 꾀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사상은 차차 쇠퇴하여 쑨원[孫文] 등의 혁명파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 《공자개제고(孔子改制考)》 《대동서(大同書)》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출처 두산백과
강유위가 제대로 학문과 중국에 대한 개혁을 절감한 나이는 1884년 27세때로 알려져있으며 이때부터 대동서의 초고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강유위는 유교에 대해 회의적이면서도 유교주의자였는데 본래의 것을 이어 고친다는 탁고개제託古改制로 나아갔고 그것이 강유위에게 반영되었다. 변법자강운동은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는 개혁과 행정개혁, 교육개혁, 군사개혁, 산업개혁, 여러 개혁안등을 준비하면서도 미약한 정치세력으로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기존 정치세력들과 관료사회전반, 유일하게 믿고 있었던 황제의 신임마저 조금씩 잃게 되었으며 군사력을 쥐고있던 군벌 위안스카이가 광서제와 변법파보다는 서태후의 편을 듬으로써 광서제는 유폐되고 명정국시의 조칙을 내려 시작됐던 변법자강운동은 100일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강유위는 홍콩으로 피신하고 떠돌다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세워지고 귀국하여 정치적재기를 노렸으나 개혁파이던 강유위가 오히려 그동안 너무 보수적이고 수구적으로 돌변되어 있었고 복벽운동을 펼치는등 여러가지 실책을 저지르자 개혁파의 지지마저 잃고 중국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2. 대동서 서문
만세(萬世)가 모두 번뇌라 내가 우연히 이 세상에 와서 현신(現身)하니, 옥에 있는 수인(囚人)은 탁세(濁世)를 슬퍼하고 기아와 고통은 이들 백성들에게 있나니 모든 착함이 양약이라. 창천(蒼天)이 어찌 신(神)이 아니라고 할쏘냐?
만 년 동안 진화가 없으면 대지(大地)는 모두 깊이 가라앉을 것이니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는 오로지 낙토(樂土)를 추구하는 것이니라. 천심(天心)은 오직 인(仁)만 있으니, 모든 선법(禪法)을 먼저 베풀지라. 점차 봄과 같은 태평(太平)세월을 볼 수 있나니, 하나하나 그 모두가 ‘꽃세계’로 변하고, 사람마다 부처의 육신으로 나타나니 대동(大同)이 바로 나의 길이로다.
우리 같은 사람은 민생을 위하여 살고 있어, 20년 동안 큰 뜻을 품고 30권을 모아 책을 만드니, 모든 사람들의 병이 바로 나의 병과 같을지니. 나의 말이 가정(假定)스럽구나. 사람과 하늘의 연고가 이미 영감으로 통하니, 세월이 빙빙 돌아가면 모두가 공허이니라. 만년사를 암기하면 왕실을 구하는 것 역시 복이 될지니, 내 나이 스물일곱, 그 당시가 광서(光緖) 갑신년(甲申年)이라. 프랑스 군대가 양성(羊城)을 격동시키니, 나는 그들 군사들 때문에 서초산(西樵山) 북쪽 은당향(銀塘鄕)의 칠회원(七檜園)담여루(澹如樓)에 피신하고 있으면서 국난을 슬퍼하고, 민생에 애통하여 대동서를 지어 백년을 기리고자 할지니라. 뜻밖에 35년이 지난 오늘, 국제연맹이 설립되었으니 ‘대동’을 실행함을 볼 수 있게 되었도다. 이 책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열부로 되어 있어 우선 갑·을 두부만을 인쇄하며, 이것은 불인이라는 잡지에 이미 발표된 것들을 뽑아서 출판하고, 나머지는 차후 인쇄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기미년 2월 5일 강유위
3. 대동서의 목적과 목차(目次)
강유위의 사회주의 공상은 그의 저서인 『대동서』에 잘 나와있다. 『대동서』는 모두 10부로 나뉘어 있다.
강유위의 대동사상이 집적되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은 이 책이지만, 이전부터 『대동학』등의 저서에서 그 사상이 드러나 있다. 대동이란 원래 유교의 고전에서 그리는 이상사회이다. 강유위는 유가의 대동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이 공부한 서구의 사회사상을 흡수하여 유토피아적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이론을 세웠다. 대동사상은 여러 이론적 전제를 가진다. 그 중 하나는 하휴(何休)의 공양삼세설(公羊三世說)이다. 공양삼세설이란 역사가 혼탁한 '거란세', 안정이 시작되는 '승평세', 안정이 성숙되는 '태평세'의 형태로 역사가 차례대로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강유위는 공양삼세설의 영향을 받아, 인류사회의 발전은 곧 태평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태평'의 경지가 곧 대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위대한 길이 실천되는 것은 곧 온 세계가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 유능한 사람을 선출하고 믿음을 강의하고 화목을 닦아나간다. 그러므로 오직 자기의 양친만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기 자녀만을 자녀삼지 않는다. 노인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데를, 장년은 쓰일 데를, 어린이는 자라날 수 있는 데를, 홀아비, 과부, 고아, 독신, 병든 자, 아픈 자는 모두 부양받을 데가 있게 만든다. 남자는 자기 직분을 갖고, 여자는 시집가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한다. 재화는 그것이 땅에 버려짐을 싫어하고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저장되지 않게 한다. 노동력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싫어하면서 반드시 자기의 것만이 되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잔꾀는 닫혀지고 일어나지 않으며, 도적질하고 남을 해치는 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집밖으로 나와 문을 잠그지 않는다. 이를 일러 대동(大同)이라 한다.
강유위는 예기 예운편 (禮記 禮運篇)이 삼세설과 대동이 모두 담겨있는 공자의 참 뜻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뜻을 이어받아 크게 빛나게 하기 위하여 대동사상을 나름대로 전개하여 그 뜻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결국 대동서는, 대동과 공양삼세라는 동양적 사상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서구의 사회사상을 수용하여 앞으로 중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 지침서인 것이다.
대동서의 목차와 순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갑부(甲部) - 인간이 세상에서 느끼는 모든 괴로움 (入世界觀衆苦)
서언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불인지심이 있다(불인지심(不忍之心) : 다른 사람에 대해 동정하는 마음. 즉 ,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일컫는 것이다. 맹자, 공손축 상 “ 인개유불인인지심(人皆有不忍人之心)
- 난세에 태어난 이상 이것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대동태평의 도를 행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대동의 도는 지극히 균등하고 공적이며 어진 것으로서, 통치의 가장 훌륭한 경지라 할 수 있다.
1장 태어남으로 인한 괴로움
1) 수태의 차이 2) 요절 3) 폐질(廢疾) 4) 야만상태 5) 변경거주 6) 노비의 삶 7) 부녀
2장 천재지변의 괴로움
1)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 2) 메뚜기 재해 3) 화재 4) 수재 5) 화산 폭발 6) 가옥 붕괴 7) 배의 침몰 8) 전염병
3장 삶에 있어서 겪는 괴로움
1) 홀아비와 과부 2) 부모나 자식이 없는 것 3)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4) 빈궁함
5) 비천함
4장 다스림을 받는 괴로움
1) 형벌과 감옥살이
5장 인정상의 괴로움
6장 선망받는 사람들의 괴로움
을부 국경 없이 세계를 하나로 (去國界合大地)
1장 국가로 인한 해로움
2장 국가의 해를 없애려면 반드시 군대와 국경을 철폐해야 한다.
3장 공의정부의 설립이 대동의 시작
4장 공정부가 각국을 통치하는 것이 대동의 중간 단계
병부 계급차별 없는 평등한 민족으로 (去級界平民族)
정부 인종차별 없는 하나의 인류로 (去種界同人類)
무부 남녀차별 없는 평등의 보장 (去形界保獨立)
1장 총론 : 부녀의 괴로움
2장 여자의 고통은 구금을 통하여 구제한 사람이 없음을 논하다
3장 여자가 인도에 있어서 가장 공헌이 크다
4장 남녀의 귀천은 신체나 뇌 용량에 달려 있지 않음을 논하다
5장 여자가 눌려 사는 것은 인류의 번영을 위한 부득이한 데 원인이 있다
6장 여자가 남자에게 사사로이 예속됨에 따라 남자의 권리는 신장되고 여자는 억압당하게 된다.
7장 여성의 억압은 나라를 지키고 종족을 전하는 데 유해하므로 금법을 변혁하여 남자와 평등하게 대우하여야 공리에도 맞고 인종에게도 유익하다.
8장 여자 승평 독립의 제도
9장 기간을 정하여 남녀간의 교호의 약속을 허락하되 부부가 될 수는 없다.
기부 가족 관계가 없는 천민으로 (去家界爲天民)
1장 총론
2장 인본원(태교원)
3장 육영원(태아육성원)
4장 소학원(10-14세 교육기관)
5장 중학원(10-15세 교육기관)
6장 대학원(18-20세 교육기관)
7장 휼빈원
8장 의질원
9장 양로원
10장 고종원(장례식)
경부 산업간의 경계를 없애 생업을 공평하게 한다.(去産界公生業)
1장 농업의 대동이 안 되면 균산을 하지 못하여 기민이 있게 된다
2장 공업의 대동이 안 되면 공인·당·업주가 다투어 나라의 혼란을 초래한다.
3장 상업의 대동이 안 되면 인간은 사기 근성이 생기고 잉여 재화가 사장된다.
4장 개인 농업과 공영 농업의 비교
5장 개인 상업과 공영 상업의 비교
6장 개인 공업과 공영 공업의 비교
7장 공영 농업
8장 공영 공업
9장 공영 상업
10장 총론 : 농·공·상업의 대동은 남녀 인권을 밝히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신부 난세를 태평세로 (去亂界治太平)
1장 지구를 1백 도로 분할
2장 전지역의 통합
3장 각 지역은 도별로 분치
4장 대동 공정부의 정치체제
5장 각 도정부의 정치체제
6장 공영 교통
7장 공영 개발 · 개간
8장 지방자치
9장 공영 금행
10장 선의의 경쟁
11장 지혜의 장려
12장 인(仁)의 장려
13장 학교
14장 형별의 폐지
15장 네 가지 금법
임부 인간과 짐승의 구별을 없애 모든 생명체를 사랑한다(去類界愛衆生)
계부 괴로움이 없는 극락의 세계로(去苦界至極樂)
4. 강유위 사상연구
대동서의 내용과 특색은 유토피아적 방식을 통해 전기 강유위의 반봉건적 부르주아 진보사상을 숨김없이 표현한 것이다. 강유위가 『무술주고』와 기타 저작에서 19세기 중국 개량파의 현실적 정치강령을 최종적으로 총결했다면, 대동서에서는 처음으로 개량주의에 공상이라는 최고목표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 두 가지는 커다란 차이와 모순을 가지는 동시에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한편으로 대동세계의 공상에는 개량사상이 잠복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대동공상은 개량파의 현실적 요구를 훨씬 초월하여 그 정치강령에서는 감히 건드리지 못하던 사상과 주장을 명백히 논술했다.
강유위는 대동이상과 해묵은 공양삼세 학설에서 분명하게, "꼭 필요한 이상과 예술형식, 환상을 찾아냈는데, 이는 자신이 투쟁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협애한 내용을 스스로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자신의 열정을 위대한 역사비극의 높이로 유지하고자 함이었다." 대동세계의 아름답고도 아득한 풍경에 대한 열정적인 환상과 추구는 당시 개량파의 중견인물의 중요한 사상적 기초와 실천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전체 세계의 고난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유토피아 이상의 실현을 위해 빛나는 헌신을 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리하여 매우 어지러운 시대상황에서 이제는 그 영험을 잃은 '치국 평천하'라는 '성현의 경전'에서 탈피하여 상하고금, 특히 서양의 것들을 힘써 배우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와 인생의 문제를 새롭게 사고함으로써 진리를 탐구하고 출로를 찾게끔했다. 이런 유토피아 사상을 통해 강유위는 전면적이고 직접적이며 비교적 체계적으로 자신의 사회․정치사상과 이론을 논술했다.
그 가운데 대동서에서는 첫째로 봉건사회에 대한 폭로와 비판으로 시작된다. 여러 가지 고통이 있고 그것을 구세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제의 억압과 낙후된 문명, 생활의 고통과 인민의 빈곤 등을 지적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대변인은 여기서 서양에서처럼 전 민중의 대변인이 되어 "사회 전체 군중의 자격으로서", "전체 사회의 대표자로서 출현"하고자 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봉건사회의 암흑과 죄악을 애써 폭로했고 수많은 인민의 깊고 무거운 고난을 대담하게 반영했다. 낡은 사회에 옳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용감하게 드러냈고, 행복한 생활을 쟁취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은 분명히 과격한 사상이었다. 그리고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모두 평화롭게 공생하며 함께 '대동'으로 나아갈 곳을 공언하여 개량주의적 사상본질을 표현했다.
과연 강유위가 말하는 대동세계는 어떠한가.
'백성이 부유함을 바라고 빈궁을 싫어한다면 농업․공업․상업․광업․기계제조 등 이익이 생기는 근원을 열어주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이 즐거움을 바라고 노고를 싫어한다면 쉬게 하고 배불리 먹게 하며 가무와 유람을 즐기게 해야한다. 백성이 즐거워하면 그것을 주고, 백성이 자유를 바라면 그것을 준다. 그리고 모든 속박과 압제의 도구, 중과세와 혹형제도, 주택과 도로의 더러움과 막힘 등 백성이 싫어하는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강유위의 이상적인 대동세계의 생활기초는 바로 이런 물질문명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세계다.
이런 황당한 환상으로 직조된 아름다운 그림은, 객관적으로는 고도로 공업화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흥 부르주아계급의 강렬한 지향과 미화의 찬가였다. 강유위의 이런 세계낙원의 환상과 사회의 필연적 발전을 확신하는 견해는 당시 사회발전의 현실적 요구에 부합했고, 객관적으로는 행복한 생활에 대한 수많은 인민군중의 강렬한 바람을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대동세계가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기초 위에 건설된다고 강조한 것은 정확하고 진보적인 생각임에 틀림없다. 강유위는 노동과 재산의 사회공유제가 대동세계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대동의 기초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얻는 것을 불허한다. (태평의 시대에 한 사람이 일을 하는 시간은 하루에 서너 시간 또는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나머지는 모두 즐기고 독서하는 시간이다.)
게으름금지는 대동세계의 4대금지(게으름․독존․낙태․경쟁금지)에서 첫째로 놓여있다. 대동세계는 착취와 억압이 없고 한 사람을 위한 사사로움이 없다고 주장한다. 재산의 소유권은 모두 공공정부가 가져 생산과 분배는 모두 계획하여 진행하고, 이리하여 대동세계에서는 천하는 공(公)이 되어 계급이 없어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대한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이 분명하다. 이런 사상은 봉건지주 등 착취계급의 사상체계와 범위를 초월했다.
이는 과감하게 진리를 탐구하고 과감하게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이론을 탐구, 토론하는 초기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분발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착취를 증오하고 억압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한 위대한 중국 인민의 사상과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풍부한 인민성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직관․단순․비과학적이라는 특징과 함께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대동서는 서양의 비판적 공상 사회주의가 언급하고 폭로한 문제를 언급할 수 없었으며, 아주 복잡하던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각종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려고 기도하지 않았다. 총괄하면 그는 '대동'사회의 경제문제의 착안했고, '대동세계'의 아름답고 원만함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과 생산력의 거대한 물질적 기초 위에 건축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며, 이때에야 진정으로 가난과 고난에서 벗어나 행복과 기쁨을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는 모든 정치가 장차 생활을 관리하는 경제사무로 변화될 것이라 예고했고, 모든 사람은 노동해야 한다는 위대한 원칙을 제출했다. 강유위는 근대 자본주의 노동과 자본의 근본적인 계급대립을 깊이있게 볼 수 없었고, 사유제 이면의 계급이익의 충돌과 투쟁을 볼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강유위의 개량주의적인 대동 공상은 부득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동서에서 또한 주목받는 것은 강유위의 여성관인데, 그는 대동서에서 이 부분에 상당한 분량을 제시했다.
봉건가정의 큰 특징으로서 남녀불평등은 맹렬한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남녀불평등이 천부인권의 공리에 완전히 위배됨을 지적하고, 여성은 생리적으로나 재능과 지혜에서나 남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황당무계한 견해를 질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선구적인 의식에도 불구하고 강유위는 봉건강상에는 반대했지만 종법제도를 찬양했다.
"만국에는 인륜이 있고 친족제도는 중국만큼 흥성한 곳이 없다. 그러므로 중국은 인류 가운데 가장 번성한 종족이다."
"반드시 중국의 법과 같아야만 인류의 윤상(倫常)에 일치하는 지극함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강유위의 사상은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원대한 이상과 그 개량방법의 모순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와 말기 사상의 역사적 모순이었다. 이 두 가지의 모순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5. '대동'사상의 내재적 모순
강유위 철학 사상의 역사관은 점진을 긍정하고 비약을 부정하는 진화사상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그의 전체 사회․정치 이론의 뼈대이다. 다시 말해 '대동'세계는 별안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고통의 점진적 역사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대동세계의 내용과 원칙은 토지공유제든 정치민주든 개인의 자유든 모두 미래의 일이다. 현재 대동세계의 원칙과 주중의 실행을 요구하게 되면 반드시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것이라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대동은 당시 개량주의자의 실제적인 주장과 의사 그리고 노선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대동세계의 원칙에 비추어보면, 수많은 인민은 즉각 일어나 자신을 위해 정치권리를 쟁취하고 행복한 생활을 쟁취할 권리가 있는데, 이것은 당연히 지주 부르주아 자유파의 이익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유위는 대동서가 완성된 후, 대동의 다스림을 바라면서도 지금 당장 시행할 수 는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빨리 시행되면 어지러움을 조장할까 걱정하여 그 원고를 감추어두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았으니, 이를 탓할 수도 없다. "강유위는 스스로 새로운 이상을 발명하고 그것이 대단히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실현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전력을 다해 가로막았다. 인류천성의 기괴함이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양계초" 이는 무슨 개인의 천성적 기괴함이 아니라, 부르주아 자유파 사상의 첨예한 모순의 양면성을 전형적으로 표현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20세기초 혁명운동(신해혁명)이 봉기했을 때, 강유위와 그 제자들은 혁명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이 원래 이상적이라 생각한 것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혁명파의 평균지권(平均地權)과 토지공유를 반대했다. 그들은 또한 민주정치를 반대했다. 또한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반대했다. 여성해방도 반대했다. 철저한 개인의 독립과 인권의 자유를 꿈꾸던 용감한 사상가가 발전하여 상기(喪期)의 단축에 반대하고 혼인의 자유에 반대하게 되었다.
대동 공상은 비교적 철저한 반봉건의 함성이었지만 결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로 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 위와 같이 한계도 분명했지만 분명히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적 정치적담론으로서 거대한 이야기를 던졌다는것에서는 이론이 없을수 있겠다. 대동서는 정치철학서로 분류되어 중국과 동아시아적 이상사회를 엿볼수 있는 책이다.
대동서는 한국 국내에도 을유문화사와 민음사의 대동서, 태동의 만화로 읽는 대동서, 북드라망의 대동서,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한길사의 중국근대사상사론(이택후)등 번역본과 연구서들이 국내에 알려진 강유위에 비해 비교적 많이 나와 있는 편이다
강유위의 공교주의, 보수주의적 내재적한계와 변법자강운동이 어찌됐던간 무의미하게 대실패했고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상의 방대함과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상상력으로 이상사회를 그리고 중국근대화에 있어서 여러 과제들과 담론들을 내놓고 중국사회에 개혁이라는 이야기를 풀어놓은것 자체가 평가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개혁과 실패, 좌절과 안타까운 말년에서 배워갈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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