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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다시 읽기, 삼국지를 즐기는 변화상들을 논문으로 읽기

Gloomy@ 2022. 1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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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나무위키 이미지

안녕하세요 글루미입니다

저는 삼국지를 역사책이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나 게임이나 정말 참 좋아합니다

특히 코에이의 삼국지게임은 안해본 것이 없으며 플레이스테이션 콘솔 삼국지게임도 진짜 많이 했고 웹게임 삼국지, 삼국지게임이란 게임은 조금씩 다 해봤고 삼국지역사카페나 삼국지카페등에서도 토론을 벌이고 재밌는 이야기도 듣는듯 삼국지매니아 오타쿠? 라고 할수 있겠죠

삼국지는 정말 많은 종류의 번역본이 있지만 대부분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 줄여서 삼국지연의와 진수의 정사 삼국지, 배송지의 삼국지등 다양한 판본들이 있습니다. 모종강의 모본을 중심으로 한 삼국지연의가 제일 기초적으로 손꼽히기도 하고 삼국지연의를 배척하고 정사 삼국지로만 읽고 따지기도 하며 시대에 따라 유비와 조조, 손권, 그 이하에 인물과 장수 책사, 정치가까지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시기의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읽게 되는 마성의 역사의 한 순간들입니다

 

삼국지에 대해서 간략 요약하자면 중국역사의 한부분으로 중국 한나라때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전한 후한으로 나뉘는 시기가 있는데 후한말 혼돈의 시기에서 중국 각지에서 영웅호걸들이 난립하고 세력을 다투는 진짜 역사이야기입니다

삼국지이야기의 시작은 184년을 기준으로 잡는 편입니다 후한말 황제의 권력이 약해지고 십상시와 하진, 하태후등 외척 및 간신들이 즐비하자 한나라는 나라가 위태해질 정도의 위기를 겪고 그 틈을 타 장각이라는 사람이 태평도라는 종교로 사람을 모아 창천이사 황천당립이라는 구호아래 봉기 또는 혁명이라 불리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켜 한나라는 크게 휘청이고 어떻게든 진압에 성공했으나 동탁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그런 동탁을 토벌하고자 또 연합군이 모이는 어지러운 전란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동탁이 주살되고나자 오히려 권력의 공백상태가 발생하고 이각, 곽사등이 잠깐 권력을 잡지만 그 때를 맞아 조조, 손견, 유표, 공손찬, 원소, 유비, 원술, 유장, 장로, 여포, 마등,  장수, 장제, 도겸등이 중앙권력에서 벗어나 영주형태로 각지에 군웅할거식의 난립이 일어나고 그런 혼란을 잡고 통일을 이루고자 여러 전쟁 와중에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로 위촉오 삼국시대가 열리게 되고 위나라의 조조가 가장 큰 땅과 권력,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통일을 이루지못하고 삼국이 모두 대를 물려주는 상황까지 오게 되어 결국에 조조, 유비, 손권 모두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위나라 조조의 신하 사마의의 아들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고 280년에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데까지 버라이어티한 100여년간의 중국의 실제 역사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하나의 재밌는 삼국지논문을 읽어보고 요약해봤습니다

삼국지에 관련된 논문도 수없이 많이 있더라고요

삼국연의三國演義다시 읽기, 1 :조조曹操와 유비劉備, 삼국이야기의 퇴적층에 새겨진 사회적 인식의 역사

삼국연의三國演義 다시 읽기, 2 :제갈량(諸葛亮), 지식인의 상상적 자아

라는 제목의 중국문학(KCI) 48권, 2006년에 학술지에 실린 재밌는 논문입니다

한국중국어문학회에서 발행되었으며 한국학술정보가 자료를 제공합니다 

저자는 이소영, 김진공으로 되어있습니다 중어중문학과의 논문 중 하나인거 같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삼국연의 다시 읽기 1, 조조와 유비, 삼국이야기의 퇴적층에 새겨진 사회적 인식의 역사를 보겠습니다

삼국지의 기본적인 연구와 2000년대에 들어서 삼국지를 받아들이는 독자와 인식의 변화들을 이야기하며 질문과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더군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다시 읽기

 

목 차 (目次)

1. 삼국지연의 개관

1) 완성과정

2) 주요내용

 

2. 삼국연의 다시 읽기 -조조와 유비, 삼국 이야기의 퇴적층에 새겨진 사회적 인식의 역사

 

1) 삼국연의를 읽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조조-유비 담론

 

2) 삼국연의 이전의 조조-유비 담론화의 양상

- 정통 역사 기록과 전상평화삼국지(全相平話三國志)

 

3) 삼국연의의 조조 - 유비 담론화의 방식

-삼국연의의 위치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

 

4) 삼국연의의 조조-유비 담론의 양상과 의미

-텍스트 안팎의 조조와 유비

 

5) 여 론 ( 餘 論 )

 

1. 삼국지연의 개관

1)완성과정

삼국지연의의 작자는 원말명초(元末明初, 1300~1400) 때 사람 나관중(羅貫中)이다. 그러나 삼국지연의는 연의-기존에 있던 사실을 부연하여 설명한다는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나관중의 독창적인 구상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다. 삼국의 역사와 그 시대의 인물에 관한 정사(正史)를 기초로 하여, 시대에 따라 확대되고 변화된 민간의 전설과 송·원대의 설화와 잡극 등을 거쳐서 마침내 중국의 대표적인 장편역사소설로 탄생한 것이다.

 위((() 삼국의 역사에 대해서 이미 서진(西晋) 진수(陳壽)에 의해 정사 삼국지가 편찬되었고, 배송지는 이 삼국지에 대해 주석을 가하였다. 삼국시대에 이미 삼국의 역사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전해졌고, 이에 따라 남북조 초기, 유의경의 세설신어(내용은 사대부의 생활과 언행을 기록한 것이 대부분인데, 강한 개성, 고전적 교양, 해학 등이 들어 있다. 사상적으로는 유가·노장사상·불교가 융합되어 있으며, 예리한 언어와 풍부한 기지를 갖춘 청담(淸談) 형식이 바탕을 이룬다. 남조 양()나라의 유효표(劉孝標462~521)가 현존하지 않는 귀중한 자료를 인용하여 주()를 달아 문헌학상 매우 중요하다)에 삼국에 대한 이야기가 20여가지나 수록되었다.

 수대(隨代)에는 삼국인물에 관한 꼭두각시극이 있었고, 당대(唐代) 이상은(李商隱)의 교아시(驕兒詩)에 아이들이 장비의 수염을 희롱하기도 하고, 등애의 말더듬을 비웃기도 한다.”는 구절이 있다. ·원 시대에는 삼국의 역사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설화나 잡극으로 널리 공연되기 시작하였다. 송대의 강사(講史) 설삼분(說三分), 원대의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와 원 잡극 중의 삼국희(三國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가 주석한 역사재료를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민간에 전승되던 화본과 희곡의 기초 위에서 마침내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를 저술하였다. 때문에 소설 삼국지의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이나 편의상 삼국지연의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원본(原本)은 전해지지 않으며 명()의 가정제(嘉靖帝, 1507~1566) 때인 1522년에 간행된 가정본(嘉靖本)’이 가장 오래된 판본(版本)으로 전해진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란 제목으로 간행된 이 판본은 홍치제(弘治帝,1470-1505) 때인 1494년의 서문(序文)이 실려 있어 홍치본(弘治本)’, 혹은 나관중(羅貫中)의 성을 따서 나본(羅本)’으로도 불린다. 모두 24() 240[, 혹은 칙()]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나관중의 원본(原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지연의는 그 뒤 가정본(嘉靖本)을 근간으로 하면서 문체나 내용이 보완되어 왔으며, 수많은 속본(俗本)들을 낳았다. () 말기에 이지(李贄, 1527~1602)는 삼국지연의에 평을 붙이면서 2개의 절()을 하나로 합하여 240()120()로 줄였는데, 이를 이탁오평본(李卓吾評本)’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 때인 1679(강희18)에 모성산(毛聲山)과 모종강(毛宗岡) 부자(父子)는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기초해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높이고 문체(文體)를 간결하게 다듬어 19() 120()로 구성된 새로운 판본을 간행하였다. 이를 모본(毛本)’이라고 하는데, 모종강(毛宗崗)의 개정본은 다른 판본을 압도하고 정본(定本)이 되었다. 오늘날 번역되는 삼국지연의의 내용도 대부분 이 모본(毛本)’에 기초하고 있다.

 

2) (삼국지연의) 주요내용

 첫째, () 영제(靈帝) 건영(建寧) 2(A.D 169)에서 진() 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280) 까지 위, , 오 삼국의 흥망과 성쇠의 과정을 서술하였다. 삼국의 역사사실에 기초하여 봉건사회 통치계급 내부의 모순과 투쟁을 개괄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암흑과 부패를 폭로함과 아울러 통치자의 잔악성과 추악성을 비판하였다. 작자의 정치적 이상이 강렬하게 부각되고 있으며, 동란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통도 일부분 반영하고 있다.

 둘째, 조위(曹魏)집단과 촉한(蜀漢)집단의 대립국면을 근간으로 유비와 조조의 갈등을 중요한 예술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작자는 영웅호걸의 난전과 폭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주로 유비 집단의 흥망과 성쇠를 실마리로 유비 집단의 군신들을 이상적인 인물로 가송하고 있다. 제갈량의 충절과 지모, 유비의 인의를 적극 강조하고 있으나, 유비의 인의는 현실감이 부족한 오로지 작자의 이상이 기탁되었을 따름이다.

 셋째, 명군현상(名君賢相))의 사상과 유비를 옹호하고 조조를 반대하는 경향이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역사적 전통으로 보면 유비를 존중하는 의식과 조조를 존중하는 생각은 시대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 이는 봉건 통치관념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조건에서 반영된 것일 따름이다. 다만 중국 최초의 한족 중심의 대통일 제국이었던 한에 대한 민족정서가 전통적인 봉건의식과 결합되어 유비를 이상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넷째, 삼국시대의 각 통치집단의 정치·군사·외교 방면에 있어서 투쟁을 광범위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묘사가 전쟁상황이다.

 삼국지연의는 광활한 역사 배경 위에서 생동적으로 위··오 삼국의 복잡한 정치, 외교, 군사상의 투쟁과 갈등을 묘사해 내고 있다.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통속적인 인생교과서의 역할을 하였다. 예술적인 성공은 조조, 제갈량, 유비, 관우, 장비, 손권, 주유 등 여러 인물 형상의 묘사, 특히 전쟁묘사를 생동감 있게 부각시켰다는 점에 있다.

 

 작자는 위··오 삼국 수령에 대한 평가에 있어, 그들의 한 왕조에 대한 충성과 반역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많은 문관과 무관에 대한 포폄 역시 그들 각자의 주인에 대한 충성과 반역으로 결정하였다. 때문에 간신인 조조 수하에도 여전히 수많은 충성스럽고 용감한 신하들이 포진해 있다. 문무 백관으로 말하자면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소속한 진영의 수령에 대하여 충성을 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관우와 장비와 유비에 대한 의리 역시, 우의의 단계를 넘어선 충성의 수준으로 전화되고 있다. 때문에 삼국지연의는 전편이 바로 이 충()자로 관통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소설적 성격을 보면 원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과도하게 팽배했던 한족중심의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정통성과 명분을 인정할 수 없는 몽골에게 무력으로 정복당했지만 현실적으로 저항할 길을 찾지 못했던 한족사대부들의 소극적인 민족주의적 저항의식이 소설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삼국지연의의 문장과 영향으로는 쉬운 문언문으로 되어 있고 통속적 표현이 많다는 것과 수많은 백화문으로 된 장편 역사소설의 모태 내지 모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장된 면이 많지 않아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는 예를 들어 삼고초려 고사에 겨우 12자를 할애하고 있으나,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37회시작부터 38회 중간까지 거의 5000자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소설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의 인자함과 전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제84회부터 91회에 이르기까지 남만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장면(칠종칠금)이다. 4회반의 분량으로 거의 23천자에 달하는 이 장면 역시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는 모두 36글자이고, 여기에 덧붙인 배송지 주 역시 334글자에 불가하다. 쉬판칭(許盤淸)과 저우원예(周文業)의 삼국연의와 삼국지의 대조본에 의하면 정사 삼국지중에서도 제갈량 관련 분량은 11722자나 되며 여기에 진수의 평문 1000여자와 배송지의 평문 3000여자를 더하면 적지 않은 분량이다. 그러나 청나라 중기의 역사가 장학성이 칠실삼허(七實三虛)라고 했듯이 삼국연의의 대부분이 허구라고 하여도 제갈량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만 무려 5800여 자나 된다.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역사왜곡의 위험성도 주지해야 될 듯싶다.

위키백과 유비이미지

2. 삼국연의 다시 읽기 -

조조와 유비, 삼국 이야기의 퇴적층에 새겨진 사회적 인식의 역사

1) 삼국연의를 읽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조조-유비 담론

 

Q: 삼국시대 이후 생성된 중국의 신화로서 삼국연의의 신화성은 어떻게 구성되어 왔을까? 어떤 담론들이 이들의 신화성을 구성해 왔는가?

 

A: 조조와 유비이다. 조조-유비 각각을 어떻게 폄하 혹은 칭송할 것인가라는 언어를 통해 당대 사회에서 경쟁하고 있는 제관념들이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념들은 조조-유비의 기의로 수렴되고, 조조-유비는 사회적 가치를 표상하는 기호로 보편성을 얻으며 살아가게 된다. 조조-유비를 둘러싼 이러 저러한 담론은 텍스트 생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가장 논쟁적인 부분이며, 텍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할 것인가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가운데 조조-유비 담론으로부터 문제의 다른 측면, 즉 중국의 새로운 신화적 인물 조조와 유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성격의 가치를 만들어왔는지, 그것이 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어떤 단서를 던져 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삼국연의 이전의 조조-유비 담론화의 양상

- 정통 역사 기록과 전상평화삼국지(全相平話三國志)

 

* 전상평화삼국지 - () 시대에는 도시와 상공업이 발달해 설화(說話)가 무척 흥성(興盛)했으며 설화인(說話人)들의 직업적인 조직이나 전문적으로 화본(話本)을 집필하는 문인 조직도 생겼다. 이를 바탕으로 간략하고 조잡했던 화본(話本)이 점차 독자(讀者)들에게 읽히는 문학 작품으로 발전되었다. () 시대에는 설화(說話) 가운데 전문적으로 장편의 역사 이야기만을 강술(講述)하는 강사(講史)가 청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강사(講史)는 한 편의 길이가 길어 여러 번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하였다. 원대(元代)에는 이러한 강사(講史)의 화본(話本)평화(平話)’라고 불렀다. 평화(平話)는 역사적 사실에 민간의 전설을 덧붙여 내용을 구성하였는데, 사서(史書)에서 온 것은 문언(文言)으로, 전설에서 온 것은 구어체(口語體)인 백화(白話)로 되어 있었다. 평화(平話)는 대체로 구성이 산만하고 흥미 위주의 허황된 내용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 시대에 장회체(章回體)의 장편소설이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도 강사(講史)의 화본(話本)으로 출판된 것으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10분의 1 정도의 분량으로 되어 있다. 문장이 세련되지 못하며 허황된 내용이 많고 역사적 사실과도 차이가 많다. 이 책은 사마중생(司馬仲相)의 명토재판(冥土裁判)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3국의 유비(劉備), 조조(曹操), 손권(孫權)은 한() 고조(高祖) 유방(劉邦, BC 247?~BC 195)에게 죽임을 당한 팽월(彭越), 한신(韓信), 영포(英布)의 환생이므로 한()의 천하를 나누어 가진 것이고, 재판을 잘 처리한 사마중상(司馬仲相)이 사마의(司馬懿, 179~251)로 환생하여 3국을 통일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진()이 천하를 통일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는 흉노(匈奴)인 유연(劉淵, ?~310)을 유비(劉備)의 일족(一族)으로 꾸며, 촉한(蜀漢)이 멸망할 때 도망간 유연(劉淵)이 한왕(漢王)이 되어 진()을 멸망시켰다는 것까지 이야기가 계속된다.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는 그 때까지 설화(說話)로서 전승되던 이야기들을 독서물로 정착함으로써 나관중(羅貫中, 1330?~1400)<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관중(羅貫中)은 평화(平話)의 줄거리를 참조하되, 진수(陳壽)<삼국지(三國志)>와 배송지(裵松之, 372~451)가 이를 보완한 <삼국지주(三國志註)>, 사마광(司馬光, 1019~1086)<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아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편찬하였다.

 

Q : 지배 문화의 층위에서 이루어져 온 조조-유비에 대한 관념의 성격과 변화를 살펴보자.

 

A : 삼국연의의 조조와 유비는 진수의 시대부터 모본이 확정된 청조까지 지배문화의 각종 담론 -정치담론(정통론)과 윤리학, 문학과 역사 담론 등- 과 민중 문화를 특징짓는 세계관이 상호 침투되어 있으며, 동시에 이 두 층위와는 또 다른 새로운 층위의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조조-유비 담론이 정통론의 쟁점으로 부상하여 문제시된것은 아무래도 남송대에 와서이다. 북송의 구양수나 자치통감의 사마광은 조위를 정통으로 보면 반면, 주희는 자치통감강목을 통해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섰다. 유비의 즉위를 유씨왕조를 잇는 정통의 실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어 주자학의 전파와 관학화 과정과 맞물려 주희의 정통론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조조-유비가 담론화되는 방식은 지배계층이 주도하는 역사기술이 어떤 정치적조건에 놓여 있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정통역사서의 층위에서 정치적 조건에 따른 정통론은 전기의 배열순서나 연호와 같은 체제 그 자체에서 이미 드러나게 되어 있고, 그것에 의해 기술의 방향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지배문화의 조조-유비담론, 그들 개인의 능력과 도덕성, 공과를 서술한 다양한 자료의 취사선택의 방향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율되는 것이다.

 

Q : 민중적 정서의 삼국지를 살펴보자.

 

A : 삼국지가 민간에 널리 퍼졌던 것은 늦어도 당대이며, 배주에 채록된 이야기 가운데 상당부분은 이미 삼국 시대 당시 만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민간의 이야기는 정치적 피지배자인 자신들과 동일시되는 역사적 패배자를 동정하는 심리가 지배적이고, 또 민중 문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뚜렷한 권선징악 구도가 이러한 심리와 결부되어 악한(惡漢) 조조, 선인 유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민중 문화의 설화 구연 전통에서, 기록된 텍스트로 전이되어 남게 된 전상평화삼국지에서도 이런 특징은 확인된다. 이 텍스트에서 궁극적 승리자는 유씨라는 혈연의 정통성, ‘()’지상주의이다. 여기에는 분명 남송부터 송대까지 지속된 이민족 침략 기간동안, 계급간의 모순을 민족의 모순으로 모두 치환시켜버림으로써 종족주의를 보편적인 원리로 왜곡시켜 갔던 역사적 상황이 게재되어 있을 것이다. 원대를 거쳐 사회적 지위가 하락한 한족 지식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민중문화와 밀접하게 결합하게 되었고, 그들의 상황인식과 착실히 성장해온 인쇄 산업이 능동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 전상평화삼국지라 할 수 있다. 이 텍스트에서도 기본적으로 조조는 악한이고 유비는 선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인과응보론은 이 구도를 부분적으로 벗어나거나 약화시키고 있다.

전상평화삼국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유비 집단이 온갖 역경을 헤치고 승리해가는 과정이다. 주인공 유비 집단의 영웅적 활약은 지나치게 뛰어나 맞설만한 상대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계속되는 전투마다 줄곧 참패하기만 하던 조조나 사마의가 결국 천하를 차지하는 비논리적인 기현상이 작품 도처에 나타나게 된다. 이런 특징들을 결합하면 민족주의와 혈연 중심의 정통론이 기형적으로 결합된 이데올로기, 그것과 불연속적으로 접속된 민중적도덕률에서 탄생한 영웅들로 볼 수 있다. 역사서의 조조나 유비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요구에 따라 그 개인의 능력과 도덕성이 경향적으로 묘사되고 있다면, 전상평화삼국지는 막연하게 분출되는 민중적 저항심이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종속된 체 비체계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배계층의 도덕적 규범과 정통론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또 다른 지층에서는 종교적 신념과 결부된 민중적 도덕성이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Q : 두 층위로 본 삼국지는 어떠한가?

 

A : 이러한 두 층위의 힘들이 길항하는 가운데 삼국연의가 생성되며 문제적 인물 조조와 유비가 태어난다. 유비는 삼국연의 형성기 당대(當代)의 정치적 정통론의 적자였고, 민중들이 자신들 편이라고 상상하는 영웅이었다. 또한 당시는 전반적으로 민중문화와 지식인 혹은 상층문화가 접합되는 시점으로, 송대 이후 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어나면서 민중 속에서 지적인 능력을 토대로 신분 상승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차곡차곡 늘어나 쌓이게 되었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가 두 문화를 매개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새로운 양태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문화, 곧 지배문화 내에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창조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비-조조는 또 하나의 새로운 위치, 주체와 그를 형성하는 타자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3) 삼국연의의 조조 - 유비 담론화의 방식

-삼국연의의 위치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

 

Q : 삼국연의의 위치와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

 

A : 남송-원대 이후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직접적으로는 주자학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고, 더 나아가면 송대부터 신진사대부라는 새로운 지배계층의 출현과 더불어 생성된 인문주의 정신의 세례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인문주의의 중요한 정신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자율적인 정신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출발한 여러 정신적 경향은(스스로 검증한 지식에 근거한 행위와 신념의 자율성이 중시되기 시작했고 각종 경전류의 재해석 - 고증학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경전의 왜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시대는 중국적인 형태로 변형되었으나 인간의 근본적인 평등성과 개인의 정신적인 해방을 중시하는 불교가 일상적 삶에 밀착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제 경향들은 청대까지 계속 교차하고 갈등하며 다양한 정신적 양상을 나타낸다) 서로 대립되거나 호응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었다. 그 중 주자학은 관학의 지위에 오르게 되고, 그 자체에 인식의 혁명적 전환을 내포하고 있는 사유체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여타의 변화가능성을 억압했고, 나아가 그 스스로 전체주의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에만 충실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자기 마음에 내재된 도덕과 선험적인 도덕적 능력, 그리고 그것을 통한 자율성의 고양 등, 송대 인문주의가 열기 시작한 정신적 영역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어갔다. 주자학적 인본주의가 엘리트주의적인 문화운동이라면 불교와 근접한 양명학은 일반대중에게까지 확산된 일종의 문화 변혁을 의미하며, 최소한 새로운 인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송대 이후의 특징은 평화로운 문화의 질서보다는 다양한 갈등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제 경향을 인간의 새로운 발견-도덕적 내면화 경향-으로 특징짓는다면, 중국 문화의 기본 특성이 본래 인간중심적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사실상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발견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사고방식이 보편화되었다는데 있다. 송대 이후 지식인들은 그들의 계급과 사회적 지위 혹은 접촉한 문화, 개인적 신념에 따라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며 보편화에 기여하고 있었다. 삼국연의의 작자들 또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있는 지식인이며, 어떤 의미에서 지배문화와 민중문화의 접점에서 이러한 정신의 보편화에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보편화는 어디까지나 지식인 계층, 더 넓혀가면 문자 해독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 하나의 역방향 과정, 즉 삼국연의의 인쇄본이 나온 이후 그것이 설서(設書)의 기본 텍스트가 되어 구연되는 과정을 생각할 때 지식인들이 담당한 새로운 인식의 체계화, 보편화의 역할은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Q : 그렇다면 새로운 역사 담론이란 무엇인가?

 

A : 개별적인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상상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서사체들보다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역사 혹은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 무엇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해석할 것인가 하는 일종의 지적인 탐색 체계의 차이가 게재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던 송대 이후 인문주의 정신의 흐름 속에서 삼국연의의 역사 담론은 인간혹은 개인을 역사 행위의 주체로 인식하여 전경(前景)으로 끌어내고 다른 요소들, 이를테면 정통성을 우선하는 관점이나 인과응보의 숙명, 운명적 영웅주의는 뒤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역사란 도덕적인 해석관과 전달되어야 할 문화적 가치의 총체이자 도덕적인 판단이 가능한 인식 대상인 것이다. 조조와 유비의 정통성 역시 그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 현실의 정당화 요구로부터 출발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총체적인 역사와 일체를 이루며 각각의 개인성은 그 안으로 스며들어가 사라진다.

과거 기전체와 편년체 혹은 기사본말체는 모두 독자의 특정한 독해에 의해 인물의 말과 행위의 재분배 과정을 통과하여야만 어떤 한 인간의 총제적인 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중 문화의 시각에서 인물은 그들의 상식과 도덕체계속에서 초현실적인 영웅으로 파악된다. 삼국연의의 작자들은 개별적인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상상한다. 삼국연의는 인물 중심의 역사서술 전통과 사마광의 연대기를 충실히 따르고, 주희의 촉한정통론을 수용하고 있으며, 전상평화삼국지의 도덕적 선악이 분명한 영웅주의의 감정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삼국연의가 어떤 관점으로 엮어내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삼국연의는 영웅적이고 개별화된 인간의 활동으로 역사를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인간은 총체적인 개인으로서 고정불변의 개인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개인성을 가진 개별 추제가 삼국의 역사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즉 고양된 인간의 자율성, 도덕성을 중심에 두고 개별 행위와 사회적 제 관계를 통합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행위와 사건이 그것을 중심으로 내적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4) 삼국연의의 조조-유비 담론의 양상과 의미

-텍스트 안팎의 조조와 유비

조조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전략삼국지
유비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전략삼국지

Q : 조조와 유비의 평가는 어떠한가?

 

A : 모종강은 우선 조조를 당대의 인간들과 동렬에 놓고 사고하며 한 개인으로서 덕과 악덕을 논하고 있다. 또 위선보다는 솔직함이 낫다는 것 즉 동기의 순수성이 무엇보다 가장 큰 가치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개별화된 윤리 감각의 맥락에서 유비의 윤리적 행위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위선을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다. 조조의 교활한 합리성은 간웅적 능력으로, 유비의 지나치게 일관된 도덕성은 허위와 위선으로 의심받았으며, 조조의 이기성은 당당한 솔직함으로 유비의 이타성은 나약함의 이중성을 띄게 되었다. 나관중이 조조를 주로 부도덕한 간()으로 소비하려 했다면 이제는 절대적 도덕을 상대화시키고 초월하려는 웅()으로 소비하려 한다. 동시에 인간의 내적인 영역의 탐색으로 관심의 방향이 전환됨으로써 조조와 유비는 더 이상 제왕이나 영웅, 도덕과 부도덕, 왕도와 패도의 상징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 즉 일상적 개인의 차원을 새롭게 획득한다. 조조와 유비는 말과 행위 이면의 것, 내적인 동기와 심리에 의해 분석되는 개인의 한 유형이 되고, 이들의 형상은 어느 하나로 고정시킬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의 복잡함과 그로 인한 여러 층위의 도덕적 딜레마를 함축하게 된다. 다시 말해 조조-유비 담론은 인간을 단일하고 불변하는 도덕적본성을 중심으로 파악하려던 것에서, 가변적이고 모순된 내적 동기들의 집합체, 심리적인 존재로 파악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었다. 즉 그 인식의 지층이 인간 마음의 안쪽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5) 여 론

근현대 중국의 삼국연의 연구에서도 조조-유비 담론은 여전히 중요한 논제가 되고 있다. 노신과 호적은 문학적 형상화 차원에서 조조와 유비에 접근한다. 이를테면 호적은 작자들은 또 유비의 인의를 묘사하고 싶었지만 용렬하고 나약하며 무능한 유비를 그릴 줄밖에 몰랐다라고 한다. 노신은 유비가 후덕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나머지 위선자같이 되어 버렸고” “조조의 간사함을 묘사하려 했으나 결과는 도리어 호쾌하고 시원시원하며 지략이 많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라고 평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삼국연의 관련 교양서적의 공통된 특징은 조조의 재해석경향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소설을 통해 환기된 조조가 역사 속 조조를 불러내는 현상, 특히 조조를 위한 변명에 열중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혹시 인격적, 도덕적 이상주의가 위선이라는 혐의를 받고 때로는 그런 이유로 해서 비난을 받을만한 시대”. “인간의 집단생활이 완전히 정의롭게 될 수 있다는 가치 있는 환상을 매도하는 사회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조조와 유비를 향유해온 방식과 언어를 통해 해당사회의 인식의 여러 지형을 읽어보는 것, 그 또한 삼국연의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인 것 같다.

 

 

-여담

재밌는 것은 삼국지와 삼국지연의 정사 삼국지를 기초로 한 삼국지를 바라보는 태도변화와 재해석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것이죠 제가 막 삼국지를 처음 읽을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이문열의 삼국지와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전략삼국지60권짜리들을 제일 많이 접했을텐데..계속 조조는 난세의 간웅이요 머리만 굴리는 표독한 폭군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삼국지 안에서 조조가 군량관 왕후를 군사의 사기를 위해서 억지로 참한다던가 완의 장수의 친척 추씨를 탐하다가 아들을 잃는다던가..조조와 화타의 이야기라던가 아무튼 범상치 않았던건 사실이었지만 조조는 뭔가 악처럼 느껴지는 삼국지의 해석들이 있었죠

유비는 어떻게 보면 한나라를 지키려는 절대 선? 착하고 배포크고 삼고초려를 하듯이 예를 지킬줄 아는 포근한 아저씨 유황숙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조조나 유비 그리고 손권등 삼국시대 군주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재평가와 재해석들이 이루어지고있죠 또 뿐만 아니라 조조 유비 손권등 군주들을 제외한 장수들 책사들 무장들과 그 당시의 군세와 전략, 인간상에 대해서도 많이 재해석과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듯합니다 

 삼국지의 시대만큼 다양한 이야기거리와 화제가 되는 분야가 있을까싶을정도의 휘발성이 있는 사료와 재료들이지만 따지고보면 전란의 시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시대, 백성들과 민초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계속 싸워야만 했던 시대의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있는지 여러가지로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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