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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원제 落下する夕方
저자 에쿠니 가오리
소담출판사
김난주 역
2009년
"나 이사할까봐." 그렇게 들렸다. "어?" 나는 책에서 얼굴을 들고, 몸을 비틀어 다케오를 보았다.
다케오는 끔찍하도록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디로?" 되물은 나의 말이 평스러웠던 것은, 그것이 설마 다케오만의 이사-나와의 헤어짐-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상관은 없지만, 하지만 왠데? 지금 사는 이 아파트, 굉장히 마음에 든다면서?"
돌이켜 생각하면 참 멍청하다. 자기가 차였다는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이사는 나 혼자서, 그러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라고 말해놓고서 다케오는 우물쭈물했다.
"그러니까 음, 그렇다는 거야."
화창한 일요일, 우리는 매화가 한창인 공원에 있었다. 차로 20분거리에 있는.
매화는 짙은 고동색 뾰족한 가지 끝으로 사방에 청결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백초원이란 과장스러운 이름에 비하면 아담한 공원, 꽃이 핀 아주 한정된 장소를 제외하면 사람들도 거의 오가지 않았다. "뭐?"
찻집 앞 평상에서 나는 책을 읽고, 다케오는 단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케오의 표정으로 보아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알았어, 라고 말했다.
마시던 주스 컵은 거의 비었고, 잘게 부서진 얼음이 옅은 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8년.
물론 그것은 상당히 오랜 세월이다.
알았어, 란 한 마디로 끝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달리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리카. 다케오. 하나코.
"나 이사할까" 라는 말로 8년간의 사랑을 말없이 보내버리고..
그 사랑하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 4일만에 이별통보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 리카.
그 다른 여자.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차분한 그야말로 소공주 같은 이미지의 하나코.
난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질투, 시기. 뭐라해도 좋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뺏어간 사람이랑 같이 살 용기는 없다.
그런데 리카는 한다.
더구나 제멋대로에다가 훌쩍 떠나버리는데다가 사랑하던 사람과의 데이트를 성실하게 시간과 장소까지 적어주는 여자와 함께 살기까지 한다.
이별한 남자와 그와 만나는 여자와 살면서 이별한 남자와 교감하기 위해서...
그렇게 리카는 헤어짐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채 15개월간 천천히 이별한다.
난 이해할 수 없다.
사랑 참 어렵다.
"다케오 씨, 어디가 그렇게 좋은데?" 나직하고 밝은 목소리로 하나코가 물었다.
"어디라니?" 뭐라 대답하면 좋을지 모르는 나의 대답 따위 기다릴 마음이 없다는 듯,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니?" 하나코가 다시 묻는다.
나는 이번에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없어."
착각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는 않다.
"자신만만하구나."
하나코가 말하고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가슴이 아파온다. 하나밖에 없던 사랑. 어디가 좋을거 같니..
다케오는 힘없이 피식 웃는다.
"여전하군." 나는 싱긋 웃었다.
나는 이 사람을 아주 좋아했었다. 지금은 기억도 제대로 안 나지만, 아주 좋아했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새롭게 좋아할 수 있을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상한 말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라고 전제하고 나는 말했다.
"나, 다케오하고 두번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다케오하고 새롭게 연애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다케오하고 같이 잘 수도 있어."
"......... 그야말로 이상한 말이로군." 다케오는 웃지 않았다. 대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 표정이 조금은 슬퍼 보여 나도 조금 슬퍼졌다.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그러나 이미 깨어진 사랑.
읽다가. 누구도 미워할 수 없었다.
하나코. 왜... 그녀는 선택한게 아니다.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고 자랑하고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은 단 하나의 남동생.
이룰수 없는 사랑.
하나코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된거지...
나는 다케오가 나간 후에도 울부짖지 않았다..
일도 쉬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살이 찌지도 여위지도 않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긴 시간 수다를 떨지도 않았다..
무서웠던 것이다..
그 중 어느 한 가지라도 해버리면 헤어짐이 현실로 정착해버린다..
앞으로의 인생을, 내내 다케오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하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헤어짐. 이별. 일이 끝나고 텅빈 집으로 들어오는 그 어색함.
믿기 힘든, 그러나 현실.
낙하하는 저녁같은 느낌.
무서움. 외로움. 그리고 슬픔.
그 감각이 너무나 싫다.
실제론 느껴보지도 않았지만..
"텁텁한 차?"
나는 대충넘어가려고 했는데 마음같지 않았다. 텁텁한 차란 다케오하고 신슈에 갔을때 사 온 메밀차다.
어쩌다 한 번씩 마실 뿐이어서 산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하기야 큰 봉지를 산 게 잘못이었다.
"그럼, 돌아오지 그랬어?"
나도 하나코의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 하나코가 얼굴을 들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돌아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듯, 하나코는 맥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한 번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거야."
너무도 꼿꼿하게 울려,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나코의 말은 언제나 아슬아슬하다.
"밖으로 나간다는것은, 그런거야."
나와 같다. 나도 사랑이 한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거라 믿는다.
아니, 다시 돌아와도 내가 거부할것만 같다.
한번 간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거짓사랑이다.
사랑은 그런거니까.
한번 나가면 돌아올수 없는 거니까.
그래, 사랑은 그런거니까.
에쿠니 가오리. 냉철하고 맑은, 차가운, 한없이 깊은.
원인은 여자,였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한다.
"나보다도?"라고 묻자,
다케오는 강아지처럼 슬픈 눈으로, 응, 이라고 대답했다.
정직함은 유아성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케오가 내 곁에서 없어진다.
그것이 사실의 전부였다,
나는, 내가 어느정도 상처받았는지 모른다.
한번은 붙잡았다.
다케오가 없으면 안돼,라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진정으로 부탁하는 일은 다케오가 들어주지 않을리 없었다.
지금까지는.
다케오가 없으면 안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앞의 문장을 읽고나서는.
실연.
사랑하던 사람이 나보다도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하는거지.
어떻게 보내줘야하는거지.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어떻게 그럴수 있는거지.
어떻게 그런일이 일어날수 있는거지.
어떻게.. 어떻게.....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거냐고.......
하나코는 모른다.
바란다고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바란다고 얻을 수는 없어.
그런게 사랑일까..
오늘도 저녁노을보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전 처음으로 낙하하는 저녁이 온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낙하하는 저녁의 느낌을 아십니까?
혹시 모르시면 읽어보세요...
잃어버린 사랑의 느낌. 허전한 사랑의 느낌.
서서히 실연하는. 서서히 사랑을 잃어가는 그 느낌.
그 고요함과 적막함.
낙하하는 저녁.
나는 냉철함을 좋아합니다. 냉철하고 명석하고 차분하고 밝고, 그러면서도 절망하고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낙하하는 저녁』은 그런 작품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혼이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의 이야기. 그리고 또 곱지 못한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곱지 못한 마음이란 미련과 집착과 타성, 그런 것들로 가득한 애정. 곱지 못한 마음의 하늘에, 조용한 저녁이 내리기를…. - 에쿠니 가오리.
낙하하는 저녁은 바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즉시 영화로 제작되었다
Falling Into the Evening, 落下する夕方, 1998
고즈 나오에가 감독을 맡았으며 하다라 토모요, 와타베 아츠로, 칸노미호, 아사노 타다노부등이 출연했다.
오늘도 글로써 연애와 사랑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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