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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영화 일본식고려장을 표현한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라야마 부시코, 1983

Gloomy@ 2022. 5.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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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야마 부시코 NARAYAMA BUSHI-KO는 1983년에 제작된 일본영화로 상영시간 130분의 영화.

1983년 칸영화제 제36회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1984년에는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도 수상하였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감독을 맡았으며 후자카와 시치로의 원작소설인 나라야마 부시코와 동북의 신무들을 각본으로 하였다.

출연배우는 오가타 켄과 사카모토 스미코, 히다리 톤, 바이쇼 미츠코 등이다. 

나라야마 부시코의 간단한 줄거리는 19세기경 에도시대 일본의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하였고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아들이 어머니를 고려장하는 과정을 담담히 나타낸 내용의 영화로 나라야마는 산의 이름, 부시코는 노래로 나라산의 노래라고 직역할수 있겠다.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우바스테야마나 오바스테야마라는 할머니를 갖다버리는 일본의 노인유기설화를 주제로 한다. 

이 일본식 우바스테야마의 고려장은 2가지 루트가 있는데 차마 노인들을 유기하지 못하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지키는 방법을 난제형 설화라고 하기도 하며 버리러 산에 올랐다가도 양심의 가책이나 가족의 정으로 다시 내려오는 시오리형설화가 있고 복합적인 설화들도 있다. 

 이 마을은 굳이 이 한번의 고려장이 아니라 마을전통자체가 부모가 나이 70세가 넘으면 나라야마 산 꼭대기에 부모를 버리고 와야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마을로 주인공인 타츠헤이가 어머니인 오린이 69세가 되자 나라야마에 대한 고려장풍습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괴로워하게 되고 오린은 담담하게 나라야마에 당연히 올라갈 준비를 하게 된다.

꼭 이 전통을 지켜야할까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이 마을은 깊은 오지에 있어 외부의 통제도 받지 않고 항상 식량이 부족하고 생존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마을로서 엄격한 규칙으로 도둑질을 하게 되면 마을주민 자체가 범인을 때려죽이기도 하고 식량에 대한 입을 줄이기 위해 첫째아들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수 있으며 형편이 되지 않는 가정은 갓난아기들을 버리는 일도 있고 규칙을 어기면 일가족을 생매장하는 사건도 벌어져 고려장은 오히려 당연시되다시피했다. 

 

참고로 성적인 내용이 있는 청소년관람불가의 영화다. 

 

주인공을 맡았던 오가타 켄(오가타 아키노부)는 2008년에 향년71세로 사망하였으며 NHK 대하드라마 태합기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역을 맡았고 이후로도 다수의 대하역사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로는 복수는 나의 것, 나라야마 부시코, 자토이치등 다양하게 활동했다. 나라야마 부시코에서는 오가타 켄(타츠헤이)이 등산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40kg의 행장을 메고 등산을 하며 훈련을 하였고 어머니역을 맡은 사카모토 스미코(오린)는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위해 멀쩡한 생이빨을 뽑기도 하는 열의를 보여주기도 하여 명작으로 탄생했다고 볼수도 있겠다.  

 

출처- 포털사이트

1. 나라야마 부시코에서 느낀 일본의 문화

 

··일을 묶어 동아시아세계로 묶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세 나라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으로 들어가면 각기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엄청난 차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는 일본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습, 사회, 사람, 종교, 자연, () 등의 문화코드를 거의 완벽하게 이미지화했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종교에 대한 일본의 태도였다. 어느 정도 문명화됐다고 일컬어지는 나라 중에서 기성 4대종교를 제외하고 민간신앙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고 생각된다. 카톨릭,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 기성종교들은 고대서부터 국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고 그것은 현대에 이른 지금에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유교적성향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충효사상과 삼강오륜으로 대표되고 중요시되는 인(), (), (), ()의 유교적소양들이 종교적성향을 떠나 사유방식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리야마 부시코>에서는 그 유교적성향마저 어려운 문제 앞에서는 언제든 폐기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타츠헤이가 동생의 성욕해소를 위해 아내에게 잠자리를 같이 해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 식량을 훔친 집안의 장남의 여자친구와 그 가족들을 생매장하는 장면, 나라야마로 향하던 타츠헤이가 죽기 싫어하는 아버지를 벼랑 아래로 떨어트리는 마을사람을 목격하는 장면, 죽은 남편의 유언과 과부로서의 생존을 위해 마을남자들에게 성행위를 해주는 아낙네, 겨울에 태어나거나 뜻하지 않게 태어난 남자아이는 밭에 버리거나 여자아이는 소금에 파는 행위 등 지금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인 난제들이 주어진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교와 불교가 일본인에게 전파되고 인식된 시대는 있었지만 더 깊은 곳에 신도(神道)라고 표현되는 애니미즘(animism)과 토테미즘(totemism)이 정신적세계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케사의 여자친구의 가족을 생매장할 때 외치던 나라야마의 신이 노하셨다라는 마을사람들의 구호는 애니미즘에서, 공동체의 규칙을 어긴 마을사람의 분노를 뜻하고 있다.

 

그런 일본문화의 특징, 일본인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다른 나라와 다른 일본문화의 두드러진 특질로는 집단성, 지역공동체성, 폐쇄성, 중층성·다양성, 양면성, 현세성 등을 들 수 있다. (최관, 일본문화의 이해, 학문사, 1999, p.148) 영화에서는 위의 특징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본문화연구의 입문서로 자리잡은 국화와 칼을 쓴 루스 베네딕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가 어떠한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루스 베네딕트, 국화의 칼, 을유문화사, 2008)

 

일본인의 계층 제도에 대한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관계 및 인간과 국가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자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어서 가족, 국가, 종교 생활 및 경제생활 등과 같은 그들의 국민적 제도를 기술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우리들은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라고 말했는데 일본에서의 자리(position)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든 사람이든 종교든 생활, 문화 모두 일본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적절한 자기위치에서 자기의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에서도 모든 인물이 자리찾기에 열중한다. 사회적현실에 순응하여 공동체에 편입되어 자신의 역할을 찾아 그 직분을 다하고 생을 마감하는 희생적인 삶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반적인 태도에서 벗어난 부류들은 이지메(いじめ)로 그 공동체에서 강제로 분리됨을 영화에서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또 인상깊었던 점으로 개방적인 성문화를 볼 수 있었다. 위에 들었던 예를 제외하고서도 삶과 성()은 언제나 함께 하는 동반자적 역할로 그려지고 있다. 금욕적인 삶과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대로 성욕이 생기면 공동체적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선에서는 동의하에 성욕을 해방시키고 절대 성적인 행위를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국과 일본은 현대에서도 성에 관한 어느 정도 자유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서부터 현재까지 성에 대하여 극도로 폐쇄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음은 흥미롭다.

 

2. 나라야마의 의미

 

오린이 나라야마에 가기 전 날, 마을의 원로들을 초대하여 의식을 진행한다. 술을 돌리면서 규칙을 설명해 주는데 그 규칙은 나라야마에 갈 때 꼭 지켜야 할 게 있다. 첫째, 산에선 침묵해야 한다. 둘째, 집을 나올 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한다. 나라야마 가는 길은 뒷산기슭을 돌아, 세 번째 산을 지나면 연못이 하나 나온다. 연못을 세 번 돌아 계단을 오른다. 산을 하나 넘으면 깊은 계곡이 나온다. 그 계곡을 지나는 길에 일곱 번 도는데, 거기를 일곱 골짜기라 한다. 일곱 골짜기를 지나면 나라야마 길이 나온다. 길이 분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계속 올라가다보면 신이 기다리고 계신다. 산에서 내려올 땐 절대 돌아봐선 안 된다.”

규칙은 간단하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마을경계의 산에 이르러 죽음의 표식이 보일때까지 나아가면 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산에서 내려올 땐 절대 돌아봐선 안 된다라는 규칙은 해석의 방향이 다양해 보인다. 마치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신화와 유사하다. 타츠헤이 역시 저승에서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처럼 어머니인 오린에게 자신도 머지않아 아들인 케사가 나라야마에 데려다 줄 것임을, 케사도 그 아들에게 나라야마에 올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뒤돌아봄은 물론 한참을 가다 어머니에게 다시 되돌아오고, 눈이 오자 또 다시 되돌아가 눈이 와서 다행이라는 말과 오열을 내뿜는다. 가족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오린의 결연한 태도는 삶과 죽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눈 내리는 나라야마에서 합장하여 죽음과 마주하는 오린의 자세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생을 내리는 축복의 땅 나라야마. 실제로 그 곳은 거동하기 힘들거나 입을 덜기위해 부모를 내버리는 패륜의 땅, 죽음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 나라야마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 자연과 관습, 사람과 동물, 숭고함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나라야마의 존재를 선뜻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따른다. 일본의 무사는 다다미에서 편히 죽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고 한다. 그 누구보다 죽음과 가깝게 지냈던 것이 일본인들 아닐까. 할복과 가미카제, 나라야마의 존재는 한국과 중국과는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넓고 쾌적한 집에서 자신의 유지를 이을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기며 재산을 물려주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성공이라 느껴지는 것이 중국과 한국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반대의 상황이 영화에서 드러난다. 오린의 남편이자 타츠헤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나라야마로 보내는 것을 반대하고 종적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오린은 그 사건을 부끄러워하지만 개인적이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남편이 부끄러웠음을 실제로는 많이 사랑했고 그리웠음을 고백한다. 타츠헤이 역시 갈등의 상황에서 사고로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고백하고 오린은 타츠헤이를 변호한다.

 

이 장면은 나라야마를 거부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지만 공동체적질서와 관습에 순응하는 모습을 동시에 표현한다.

나라야마는 피할 수 없는 겨울과 같은 존재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내심 천국인듯 기대하지만 올라서면 지옥과 같은 광경도 당시 힘들었던 사회상과 정치상을 나타내는 의미도 담겨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라야마가 종착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린의 유품을 나누어 평소같은 삶을 살아가는, 어떻게 보면 무정해보이는 이 광경에 삶에 대한 집착과 살아있다는 가치의 최고지향점을 나타내기도 하는 때묻지 않은 자연의 상태를 나타낸다고도 생각된다.

 

3. 동아시아적 가치관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은 극도의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한국의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에서 일본제국주의의 힘을 믿고 일본에 협력했던 친일세력들은 갑자기 8.15해방이라는 전환점을 맞는다. 내선일체라는 가치관 속에 살아왔던 그들은 변화를 느끼고 위기를 맞이하지만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이라는 변화속에 가치관을 재정립한다. 그 후 6.25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 가치관의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정치상의 혼란이 현재까지 야기되고 있다. 흑과 백, 그리고 회색. 어떤 색도 최우선의 진리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근대 이르러 만주족을 몰아낸 한족이 중심축을 잡는다. 신해혁명으로 맞이하려는 새로운 미래는 산산조각나고 제국주의와 일본에 침략에 맞서 대응하면서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과 가치관의 대립으로 큰 상처를 입고 공산당이 내전을 수습, 통일하여 중화민국에 이른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중국도 지금 정체성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있다.

 

일본은 한국, 중국과 다른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일본은 내부정치의 굴곡이 있었을뿐 19452차세계대전의 패배까지 침략에 굴복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쇼토쿠태자이래 종교로서 큰 혼란을 겪지 않은 유일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도 아니고 신이라 일컬어졌던 천황제가 혹여 혼란을 일으킬지 몰라도 일본에게 가치관의 혼란은 무엇일까.

한국과 중국에서의 이중적인 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태도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혼네(ほんね)와 다테마에(たてまえ)로 대표되는 일본의 이중적표현과 태도는 그것을 허용하고 있다. 속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않음으로써 서로 다름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서로 피해가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치닌마에(いちにんまえ)로 대표되는 일본의 피해주지 않기, 본인의 역할완수하기, 공동체적질서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문화가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적혼란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야마 부시코의 영화속에서도 타츠헤이는 오린의 나라야마행을 두고 심각한 갈등에 휩싸이지만 결국에 나라야마로 최선을 다해 오린을 봉행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기고 실행한다. 오린의 굳은 결심을 존중해주기 위해서, 아들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공동체적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행하고 싶지 않음에도 본인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강직한 무사도로 대표되는 일본의 신념도 최후의 선을 그어놓고서는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유연함을 나타내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화()사상을 고대서부터 지켜옴으로써 가치관의 혼란을 봉합하고 있는 것이다.

 

4. Humanism vs Humanism

 

휴머니즘은 현재 최고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관념 중 하나로, 대체적으로 서양중심에서 해석되는 관념이다.

동양문화와 휴머니즘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동아시아문화권에서 실제적으로 중국의 영향이 제일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대 봉건사회에서 현대의 중화민국까지 중국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일본은 어떨까. 이 영화에서 휴머니즘을 느꼈던 부분은 케사의 부시코였다. 눈이 와서 할머니는 운이 좋다는 간단한 노래는 오린과의 갈등을 어느 정도 치유하고 추모하는 느낌을 전해 줬다. 그러나 눈이 오지 않았더라면 어떤 장면이 전개되었을까. 생명의 존엄성을 낮추고 가족을 희생함으로써 살아남을 그들에게 휴머니즘은 존재하는 것일까. 동양철학은 휴머니즘과 상대되는 개념이 분명히 살아있다. 타츠헤이는 본능적으로 본인이 행하고 있는 일이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타마와 케사, 그 외 사람들은 나라야마에 다녀온 타츠헤이에게 오린의 일을 아무도 묻지 않는다. 동생은 여자와 누워있고, 가족들은 유품을 나누어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고 케사가 부시코를 흥얼거릴때의 느낌은 형용할 수 없는 허무감이었다. 결과적으로 휴머니즘의 끝은 흰 눈이 쌓여 추운 겨울을 맞이하다가도 다시 봄을 맞이하고, 겨울을 맞이하고 봄을 맞이하는 반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휴머니즘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외치지만 그것은 언제든 허물어질수 있는 모래성과 같은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오린이 계속 함께 한다면 늘어나는 가족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이 전체가 고통속에 아사하는 것이 휴머니즘일까, 한 사람의 희생이 휴머니즘일까. 그것은 일본만의 문제일까, 동아시아만의 문제일까, 전세계의 문제일까, 지구의 문제일까.

 

다수를 위한 휴머니즘과 개인을 위한 휴머니즘이 갈등구조를 맺게 될 때 과연 어떤 휴머니즘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본다. 내가 타츠헤이였다면 그 선대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떠났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생과 사, 모자의 애정은 상대되는 개념이다. 살았을때의 애정은 오린의 죽음으로서 끊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의 코이케 류노스케의 생각버리기연습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었던적이 있다. 그것은 중국과 한국과의 문화와는 대비되는 일본의 내려놓기와 단절하기가 현재에 와서 설득력을 전해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뿌리깊은 유교질서, 중국의 중용, 일본의 습합의 차이가 메꿔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기 지향하는 바가 틀렸던 휴머니즘들이 상대적인 개념에서 상호유기적인 관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한 예가 될 것이다.

흰 눈이 녹고 새로운 봄이 왔을 때 화()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문화의 특징이 한국, 중국과 달리 Humanism vs Humanism의 끝에서 대통합을 이루기 좀 더 쉬운 특장점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나라야마 부시코는 청소년관람불가지만 죽기전에 꼭 봐야할 영화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명작으로 영화에 담겨있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와 함께 영화로서의 완성도도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작품이기때문에 좀 어두워보여서 화면이 잘 안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게 사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매우 훌륭한데 이게 영화인지 실화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몰입이 되는 명연기를 펼친다.  

일본영화의 명작이기도 하지만 아시아영화의 명작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아울러 2022년 5월29일 제 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헤어질결심 박찬욱감독의 칸감독상과 브로커 송강호배우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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