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이성계 가문과 동북면 그리고 가별초대간에서 시무책을 올렸는데, 동북면의 함주 등지에 가별초라고 불리는 자들이 모여서 무리를 이루고 국역을 지지 않으며 별도가 가병(家兵)이 되어 사적으로 서로 결합하여 마음대로 하니 주현에서 통제하지 못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태종실록 5, 태종 2년 12월 신해비록 왕실 소속이라고는 하나 일반 백성을 가별초라고 부른다. 왕(태종)이 불가함을 알고 신묘년(태종 11년, 1411) 에 가별초를 혁파하여 관군으로 삼으니, 종실도 모두 감화되어 혁파하였다. 오직 도총제(都摠制) 이지영(李知英)은 이지란(李之蘭)의 자식으로 아직 혁파하지 않았다. 이 때에 이르러 왕이 그를 불러 말하기를, “동북면의 백성은 공역도 지고 사역도 지니 고통이 심하다. 비록 세전(世傳)이라고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