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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무장공비침투 1.21 김신조사태를 막다가 순직한 최규식경무관과 정종수경사의 동상과 순직비 방문후기

Gloomy@ 2024. 10.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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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루미입니다

오늘은 종로구 보훈시설중 하나인 북한의 청와대 무장공비침투사건인 1.21사태 김신조사태를 막다가 순직한 최규식경무관 동상과 정종수경사의 흉상과 순직비가 있는 곳을 방문해봤습니다

최규식경무관동상과 정종수경사 흉상 순직비의 위치와 주소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산1-1, 도로명주소는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42입니다

부암동 넘어 창의문과 윤동주문학관 인근에 위치해있으며 바로 길을 내려가면 경복고와 청와대가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옆에 동상과 흉상 순직비 기념문등이 있으며 주차불가능합니다 주위 주차할곳도 거의 없어요

대중교통으로는 1020번버스와 7022번버스 7212번버스로 자하문고개 윤동주문학관 정류장에 하차하면 바로 보입니다 

윤동주문학관을 먼저 관람하고나서 최규식경무관동상과 정종수경사 순직비를 보러 길을 건넙니다 

길을 건너면 청계천발원지라는 수원지 발원지가 있구요

그 옆에는 서울한양도성 순성길이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언덕도 있구요 창의문도 있구요 좀만 걸어가면 미쉐린가이드에 실린 유명한 자하손만두라는 맛집도 있습니다 무려 만두국이 2만원하는...

아무튼 궁금했습니다 왜 경찰표시가 있고 금색모양의 동상이 서있는지...가까이 가기전까진 전혀 몰랐어요 

이 동상이 최규식경무관의 동상입니다 

그 옆쪽으로는 정종수경사 순직비가 있습니다 계급이 뭐라고 몇십년간 최규식경무관 동상만 있다가 2017년에야 정종수경사의 흉상도 마련되었습니다 경찰행사때마다 최규식경무관과 정종수경사는 계속 언급되면서 여러 추모행사에 단골손님이신데 50년만에 세워졌다는게 참...옆에 큰 동상이라도 없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1.21사태...흔히 김신조사태로 더 유명한 북한의 무장공비침투사건입니다

1968년 1월21일 북한의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하다가 발각되어 저지된 사건인데요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의 무장공비들은 1968년 1월17일 개성을 떠나 매현리 고랑포 임진강을 지나 파주 법원리 삼봉산 파평산부근 초리골의 야산에서 나무꾼 우씨형제를 만났다가 살려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때 나무꾼의 신고를 받고 북한침투소식을 확실히 감지했고 그 이후 무장공비들은 앵무봉, 도봉산과 북한산 우이령과 비봉을 넘어 진관사계곡 승가사에서 북악산과 세검정을 넘어 청와대 바로 앞까지 왔다가 부암동 창의문근처 자하문고개에서 정종수경사를 비롯한 9인의 검문을 받습니다 1월21일 밤9시40분경 무장공비들은 검문을 받는 정종수경사에게 방첩부대원이니 cic시아이시대원이니 특수훈련을 받고 부대에 귀대복귀중이라고 길을 비키라고 합니다 

이후 종로경찰서 서장이던 최규식서장은 무전보고를 받고 바로 기동타격대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공비들을 막아섰으나 자하문고갯길로 넘어오던 1813번 버스를 본 무장공비들은 국군들이 자기를 진압하러 온것으로 오인하고 바로 검문하던 대한민국 경찰들과 민간인들 버스에까지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며 흩어져 도망칩니다

그 과정에서 최규식서장은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하였으며 이후 경무관으로 특진되어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으며 인근에 동상도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 순경이었던 정종수경사도 하복부에 총 4발을 맞고 10일후 사망하게 되어 경사로 특진되었으며 화랑무공훈장을 추서받습니다 유해는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었으며 최규식경무관동상옆에 순직비만 있다가 2017년에야 청운동 자하문고개에 정종수경사 흉상도 만들어지게 된겁니다  

이후 산으로 도망간 무장공비 31명등은 주위 경찰들과 민간인들에게 발포하여 경찰들이 부상을 당하고 민간인도 5명이 사망하였으며 인왕산과 비봉, 의정부시등으로 도주한 무장공비들은 전투를 통해 대부분 사살되어 공식적으로는 총 29명의 사살이 확인되었고 김신조는 생포하였으며 미확인1명으로 발표되었으나 김신조의 증언에 따르면 도주는1-3명이 더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는 북한에서 1.21사태 생존자로 지목된 인민군대장 박재경이라고 합니다 

저는 최규식경무관과 정종수경사의 흉상과 동상을 보고있지만은 그 당시에 이 두명말고도 군장병25명과 민간인7명등 32명이 사망하였으며 52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후 김신조는 이튿날 생포되어 나온 기자회견 인터뷰에서 침투목적을 물어본 기자에게 박정희 모가지따러 왔수다라는 이야기까지 하며 국민에게 안보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1.21사태 김신조사태의 영향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생겼으며 예비군과 5분대기조 육군3사관학교 전투경찰대가 만들어졌으며 국군복무기간이 연장되었고 684부대등의 보복부대가 창설되었으며 북대문 숙정문과 우이령등을 비롯해 일반인통행금지와 함께 폐쇄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교련과목이 생겼으며 광화문 이순신동상이 만들어지는등 많은 여파와 영향을 남겼습니다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로 처음 1.21사태 김신조사태를 막아선 최규식경무관 동상과 정종수경사 순직비와 흉상이 이곳에 추모시설로 되어있으며 경찰역사순례길로도 되어있어 경찰들에게 특히 많은 시사점을 주고있는듯합니다

요즘 세대는 무장공비라거나 1.21사태 김신조사태를 잘 이제 모르는 세대들입니다 저도 그렇구요

아참..생포되었던 김신조씨는 1970년에 풀려나 대한민국으로 귀순하고 자영업도 하고 건설사도 다니며 대한민국에서 결혼도 하여 가정을 꾸리고 목사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현재는 김재현으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생존해있습니다 

그런 배경은 김신조씨가 투항할때 휴대했던 무기 기관총과 권총, 수류탄을 비롯해 실탄350발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고 나무꾼들을 살려줬던 사건등이 있었고 이후 유일하게 투항하였으며 조사에 대부분 협조하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북한과 6.25전쟁을 통해 정전상태로 휴전되있는 상태로 아직도 전쟁중인 상태라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리고 연일 우리나라를 향해 강경한 언어를 사용하며 도발하고 있는데 이런 살아있는 역사의 아픈 현장을 방문하며 더욱 안보와 국방의 중요성을 더 되돌아보게 합니다 

무장공비를 제외한 모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지만 이왕 창의문과 자하문고개 윤동주문학관을 방문하시는분들은 시간내셔서 같이 방문하시는게 좋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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